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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미국의 문물을 배워 조국 동포를 구하라)

미국의 문물을 배워 조국 동포를 구하라

1904 9살짜리 유일한은(1895-1971) 아버지의 당부를 가슴에

새기며 유학 길에 올랐다. 기독교 가정에 입양된 그는 근면과 절약

정신을 온몸가득 익혔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16세 때부터 구두를

닦고, 신문을 돌리며 고학으로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중국 물품을

들여다 팔아 학비를 댄 미시간 대학 재학시절부터 상재(商材)

빛을 발했다.

1919년 대학 졸업 후 제너럴 일렉트릭 회사에 들어간그는 안전된

직장에 안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몸 안에서 꿈틀대는 기업가 정신은

그를 창업의 길로 이끌었다. 중국인들이 즐겨먹는숙주나물 통조림을

개발해 시장을 개척했다. 사업이 날로 번창하자27세 나던 1922

라초이식품회사를 세워 4년 만에 50만 달러의수익을 올리는 대단한

사업수완을 발휘했다.

숙주나물의 원료 녹두의 안정적인 공급처를 구하러 중국 출장 길에

나선 1924, 그는 20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가족을 북간도에서 상봉했다.

그때 동포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하고상업으로 국가를 살리고 개인도 살릴

방도를 궁리했다. 2년 뒤 귀국해 병든 동포를 구하는 제약회사유한양행

세우게됩니다.

항상 국민보건을 위해 일하라, 우리 국민은 일본보다 못하지 않으니

민족의 긍지를 갖고 일하라, 유한은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

직원 조회 때마다 토로한 그의 기업정신은 일제 치하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입니다.

사실 그는 소년병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10대 시절부터 1945년에 국내

첩보활동을 위한 침투계획인 " NAKPO " 작전에 참여할 때까지 평생

독립운동에 몸 바친 숨은 지사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과 정신이 감동을 자아내는 더 큰 이유는 부의 세습 을 넘어

사회적 상속을 실천한 보기 드문 기업가였기 때문입니다.

1937년 그는 주식을 사원들에게 나누어 주어 종업원과 공유해야 한다는

지론을 실천에 옮깁니다.

그 때 시작된 유한양행의 종업원지주제는 1973년 제도화 됩니다.

“유일한 평전은 나눔이 주는 마음의 풍요를 잘 보여주고 있다.

비문에 새겨진 그의 기업가 정신을 보자 -- “기업에서 얻은 이익을

1. 기업을 키워 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2.성실하게 납세하며,

3. 그리고 남은 것은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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