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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

어느 여대생의 암벽등반 소회

열린캠프 소식지에 나온대학 4학년 여대생의 글입니다.

난 참여를 못했지만 멋진 글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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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암벽등반이라는 운동을 시작하고 처음 정상에 오른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게 있어 지난 1박 2일이라는 시간은 상상도 못할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더욱 더 기억에 남는 첫 등반이 될 것 같다.

집 앞의 산만 다녔던 내게 등산은 언제나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코오롱 오지탐사대 3차 테스트와 히말라야 ABC 트레킹의 참여가 산에대한 생각을 바꾸게 했다. 그 느낌은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4학년 2학기라는 시점에 나를 산악부에 가입하게 하고 열린캠프에서 암벽등반을시작하게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등산학교에서 인공암벽 훈련을 하고 있는데 ㅇㅇ 선생님께서 주말 인수봉 등반을 권유하셨다. '처음'이라는 낯설고 두려운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올해 고등학교 친구의 죽음 이후로 언제부턴가 나는 의식적으로 '처음'이라는 단어의 두려움을 떨쳐버리려는 노력과 '도전'이라는 단어를 함께 상기시키곤 했다. 조금 있으면 곧 시험기간이 시작된다. 시험이 끝나면 날씨가 추워지므로 이번이 최적기라는 생각에 등반에 참여하겠다는 대답을 했다. 그후 나는 설렘으로 며칠 동안 쉽게 잠을 잘 수 없었다.

금요일 오후, 학교 수업을 마치고 등산학교에 들러 서둘러 배낭을 꾸려 우이동으로 떠났다. 배낭을 메고 하는 산행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산은 언제나 나를 중도에 포기하라는 시험대에 서게 했다. 백운산장까지 가면서 선배님께 몇 번이나 언제 도착하는지를 여쭈어 보았는지 모르겠다. 힘들게 도착한 야영장에는 맛있는 음식과 우쿨렐레 연주, 그리고 은은한 달빛이 나를 한껏 감상에 취하게 했다. 마치 자연인이 된 기분이었고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낭만이었다.

비박을 한 후 새벽 4시 반에 기상하여 5시경에 인수봉으로 출발했다. 두 팀으로 나눠서 올랐는데 비교적 쉬운(?) 경로로 팀에서 제일 끝에 올랐음에도 나에게는 매 순간이 아찔하고 살기위한 몸부림이었다. 높이와 추락을 완충시키는 매트리스가 없어서 인공암벽장에서 훈련할 때와는 전혀 차원이 달랐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많은 종류의 운동과 레포츠를 경험해 보았지만, 암벽등반은 다른 운동과 비교가 안될 만큼의 여러 매력을 지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취감, 두려움, 짜릿함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인수봉을 거의 올라 한쪽에 있는 귀바위가 오늘 훈련대상지다. 선배님들이 귀바위 오버행에서 훈련하는 동안 나는 위쪽 테라스까지 한마디로 어센더로 올라 하강하는 훈련을 하게 되었다. 팔 힘도 팔 힘이지만 올라서서 내려다볼 때의 공포감을 견디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귀바위에서 선배님들의 훈련과정을 지켜본 후 영자크랙, 참기름 슬랩을 지나 인수봉에 오르게 되었다. 귀바위를 떠날 때부터 내리던 빗줄기는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였다.

바람에 벗겨지는 구름사이로 맞은편 백운대와 만경대 봉우리가 들어난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다. 멋진 배경을 두고 그냥 갈 수 없다며 선배님이 증명사진 촬영을 권유한다.

정상에서 첫 등반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번개가 쳤다. 푸른빛의 스파크와 화약 냄새, 비명과 함께 두 분이 쓰러졌다. 순간 정신이 몽롱해지고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했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낙뢰 탓에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렸다. 설마했던, 그동안 뉴스로만 보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낙뢰 사고는 나를 한순간에 어린아이로 만들었다. 그에비해 선생님과 선배님들은 부상자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구조대에 연락하는 등의 조치를 하고 계셨다. 위에서 머무르는 것은 또 다른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부상자를 헬리콥터로 이송하기 위해서도 빨리 아래로 하강해야 했다.

하강 로프를 설치하고 나를 먼저 내려보내 주셨는데 처음에는 다른 선배님과 동반하여 하강하다가 도중에는 혼자 하강해야했다. 등산학교 훈련센터에서 한번 귀바위에서 한번 하강연습을 했지만, 위에서 목격한 사고로 말미암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위에서 아래에서 선배님들이 잘 내려오고 있다고 계속 말씀해 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나에게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더욱 실감나게 했다. 태어나서 경험한 것 중에 손으로 꼽히는 무서운 순간이었다.

부상자를 소방항공대 헬리콥터로 이송시키고 나머지 일행은 백운산장으로 내려와 몸을 추스른 후 하산하였다. 20년넘게 산에 다닌 선배님도 처음 겪는 일이라던데, 난 등산 첫날에 겪게 되다니....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어제의 일이 믿어지지 않는다.

일생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한 위험한 일을 겪은후, 역설적이게도 나에게는 삶을 살아갈 용기와 자신감이 생겼다. 현재로서는 이번 등반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 알수 없지만 내가 추구하는 바르고 강직한 삶으로 나를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발전적인 방향으로 변하더라도 앞으로 비올 때 산행은 자제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사고를 떠나서 1박 2일 동안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해주신 선생님, 귀찮았을텐데도 물심양면으로 나를 챙겨주신 선배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 누구보다 놀라셨을 부상당한 두 분의 빠른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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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를 읽어 보고 난 후 기억을 되세겨 보니, 어느날 전철을 타러 같이 갔던 그 학생!

낙뢰가 뭔지 경험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 대한민국의 진정한 리더가 되기를...

얼굴이 생각 나지 않지만...조만간 보기를 희망하면서...

그리고, 부상자 두분 모두 지금은 건강하답니다.

열린캠프! 홧팅!